단순함 속에서 시작되는 풍요
오늘은 같은 재료, 다른 이야기로 차려낸 하루의 식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요리를 할 때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습니다. 식탁 위를 다채롭게 꾸려야만 제대로 된 한 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한 가지 재료’만을 정해 하루 동안의 요리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그 재료로 ‘감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하고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동시에 무궁무진한 변주가 가능한 식재료였기 때문입니다.
아침에는 감자를 얇게 썰어 올리브 오일에 굽고, 간단히 소금만 뿌려 먹었습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익어, 단순한 맛 속에서 예상치 못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점심에는 감자수프를 끓였습니다. 감자와 양파만을 넣고 곱게 갈아내자, 고소하면서도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따뜻함이 온몸을 감싸주었습니다. 저녁에는 감자를 오븐에 넣어 구운 뒤 허브를 뿌려 마무리했습니다. 같은 재료인데도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다른 성격의 요리가 되어 식탁을 풍성하게 채웠습니다. 단순함이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풍요로움이 될 수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느려지는 시간, 깊어지는 몰입
하루 종일 같은 재료로 요리를 하다 보니, 조리 과정 하나하나에 더욱 세심하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껍질을 벗기는 손길, 칼질의 속도, 불 위에서 끓어오르는 소리까지도 평소보다 오래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요리를 할 때는 ‘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이 재료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이 시간을 천천히 잡아두었습니다.
특히 점심의 감자수프를 만들 때는 감자를 삶고, 식히고, 으깨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명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재료가 부드럽게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제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고 안정되었습니다. 같은 재료를 반복해서 만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리 속 몰입’이 생겼고, 그 몰입이 주는 성취감은 의외로 크고 깊었습니다. 하루의 템포가 확실히 느려졌고, 그 안에서 제가 놓치고 살던 사소한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듯했습니다.
같은 재료, 다른 이야기
저녁 식탁에 앉아 하루를 돌아보니, 한 가지 재료로 만든 음식들이 단순한 실험을 넘어 삶에 대한 은유처럼 다가왔습니다. 감자는 언제나 같은 감자였지만, 손길과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향, 질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똑같은 하루라 해도 내가 어떤 시선으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하루가 되는 것이지요.
또한, 같은 재료를 활용하다 보니 ‘낭비 없는 하루’가 만들어졌습니다. 감자의 껍질은 따로 모아 바삭하게 튀겨 간식으로 먹었고, 남은 수프는 다음 날 빵과 함께 곁들일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를 끝까지 활용하는 과정에서 ‘충분함’의 의미를 다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매번 새로운 것을 찾고 소비하는 것보다, 지금 내 손 안에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고 즐기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풍요가 아닐까요.
‘한 가지 재료로 하루 요리하기’는 단순히 식탁을 채우는 도전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집중하게 해 준 작은 실험이었습니다. 매 끼니를 준비하며 “오늘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고, 이는 음식이 주는 치유와 기쁨의 본질을 다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재료를 선택해 새로운 하루를 열어보고 싶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재료냐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와 느려지는 과정 속에서 발견하는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