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독서에서 벗어나기로 한 이유
느린 독서법: 하루 10쪽 읽기가 바꾼 독서의 깊이가 지니는 가치를 아는가? 나는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것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독서 모임에 나가면 “이번 달 몇 권 읽었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숫자를 늘려 말하거나, 얇은 책을 급하게 읽어 치우기도 했다. 책 읽기마저 경쟁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는 이유가 흐려졌다. 책을 ‘소유’하거나 ‘완독’이라는 성취를 쌓기 위한 도구로만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내용은 머리에 오래 남지 않았고, 깊은 울림도 줄어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하루 10쪽만 읽기”라는 느린 독서법을 접했다. 속도보다 몰입과 사유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읽지 않고, 하루에 단 10쪽만 읽고 멈추는 것이다. 단순히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읽은 내용을 곱씹고, 스스로의 생각과 연결하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한 달 동안 하루 10쪽씩만 읽어보기. 과연 내 독서는 어떻게 달라질까?
하루 10쪽 독서 실험의 실제 경험
📌 첫 주: 불편한 멈춤과 갈증
처음에는 솔직히 불편했다. 책이 흥미로울수록 더 읽고 싶었지만 “10쪽까지만!” 하고 책을 덮어야 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반쯤만 먹고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멈춤은 곧 갈증을 만들었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머릿속에서 문장들이 맴돌았다. ‘다음에 무슨 내용이 나올까?’, ‘이 부분은 내 경험과 어떻게 연결될까?’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전처럼 흘려 읽고 곧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구절을 오래 붙잡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 둘째 주: 밑줄과 메모의 습관
둘째 주에는 읽는 속도가 느리니 오히려 메모가 늘어났다. 하루 10쪽을 읽고 나면 여백에 짧은 감상을 적거나, 밑줄을 긋는 습관이 붙었다. 예전에는 밑줄이 단순히 ‘좋은 문장 표시’였다면, 지금은 그 밑줄이 곧 나와 대화한 흔적이 되었다.
예를 들어, 심리학 책을 읽을 때 “불안은 피하려 할수록 커진다”라는 문장을 접했다. 10쪽 읽기를 실천하는 중이었기에 책을 덮고 나서 내 삶 속 불안을 돌아보게 되었다. 회사에서의 작은 실수, 관계에서의 조급함 등이 떠올랐고, 문장이 나에게 직접 말을 거는 것 같았다.
📌 셋째 주: 생각이 자라나는 시간
10쪽 읽기 후 남은 시간은 생각으로 채워졌다. 책을 덮고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시며, 읽은 내용을 천천히 곱씹었다. 신기하게도 책 속 내용이 다른 경험과 이어졌다. 철학책에서 읽은 구절이 지난 여행의 풍경과 연결되고, 소설의 대사가 친구와의 대화에 비춰졌다.
이 시점부터 깨달았다. 책은 읽는 시간보다 곱씹는 시간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느린 독서법은 단순한 독서 습관이 아니라, 삶 속에서 책을 살아 있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 넷째 주: ‘완독’이 아닌 ‘관계 맺기’
마지막 주에는 한 권의 책을 완독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책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 같았다. 급히 여러 권을 읽고 잊는 것보다, 한 권과 오래 대화하는 편이 훨씬 만족스러웠다.
하루 10쪽 독서는 내게 양보다 질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책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느린 독서가 남긴 변화와 깨달음🌱 책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다
예전에는 독서가 책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나 중심의 독서로 달라졌다. 책을 통해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질문을 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이 변화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일상에 스며드는 독서
느리게 읽으니 책 속 한 문장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 남아 일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마인드풀 이팅’처럼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듯, 독서 역시 일상의 작은 명상이 된 것이다. 덕분에 독서는 책상 앞에서만 하는 행위가 아니라, 삶 전체를 풍요롭게 하는 활동으로 확장되었다.
🕊 성취보다 평온을 얻다
빠르게 읽을 때는 ‘몇 권 읽었나’라는 성취가 중요했다. 그러나 느린 독서법에서는 성취 대신 평온과 몰입이 따라왔다. 속도를 늦추니 마음도 느려졌고, 독서가 경쟁이 아닌 쉼이 되었다.
하루 10쪽 느린 독서법은 단순한 독서 습관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주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새롭게가 아닌, 지금 있는 것을 깊이 음미하는 방식.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삶을 더 넓고 깊게 느끼게 되었다. 빠르게 지나치는 문장 속에 숨어 있던 보석 같은 의미들을 발견했고, 책과의 관계가 단단해졌다.
만약 독서가 버거운 과제가 되었다면, 하루 10쪽으로 시작해보길 권한다. 양이 아닌 깊이, 속도가 아닌 몰입에서 오는 독서의 즐거움은 우리가 잊고 있던 ‘읽는 행복’을 다시 일깨워줄 것이다.